루트 14 · 길 위에서 만나는 이야기

케이프타운 → 나마콸란드(야생화

이 여정에서 만나는 18개의 이야기입니다. GPS 음성으로 안내되는 역사·문화·자연 해설을, 여기서는 글로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케이프타운

사라 바트만 — 슬레이브 로지

지금 지나는 이 건물, 오늘날은 슬레이브 로지라는 이름의 박물관이지만 원래는 노예들이 지내던 숙소였어요. 이 안에는 사라 바트만이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전시돼 있는데,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예요. 사라는 이스턴 케이프의 감투스 강 유역에서 태어난 코이코이족 여성이었어요. 케이프타운에서 하녀로 일하던 그녀에게, 1810년 한 영국인과 케이프타운 상인이 접근해서 런던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꾀었어요. 그렇게 그녀는 대서양을 건너 런던 피커딜리 거리에 세워졌고,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전시됐어요. 당시 유럽인들 눈에는 낯설게 보였던 그녀의 체형이 구경거리가 된 거죠. 영국의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그녀를 구하려고 법정까지 갔지만, 강압을 받았을 가능성이 짙은 상황에서도 그녀는 법정에서 스스로 원해서 왔다고 진술했고, 결국 풀려나지 못했어요. 1814년에는 프랑스로 팔려가 파리에서도 비슷하게 전시됐고, 당대 최고의 박물학자였던 조르주 퀴비에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1815년, 겨우 스물다섯 살 무렵 파리에서 눈을 감았는데, 퀴비에는 그녀의 시신을 해부해서 뇌와 생식기를 표본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 표본은 무려 1974년까지, 그러니까 그녀가 죽고 160년 가까이 지날 때까지 파리 인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녀가 마침내 고향 땅으로 돌아와 묻힌 건 2002년, 넬슨 만델라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한 뒤였어요. 공교롭게도 그 반환식이 열린 날짜가 남아공의 ‘여성의 날’이었다는 것도, 알고 나면 마음에 오래 남는 우연이에요.

카미사 — 도시 밑을 흐르는 숨은 강

운전하면서 잠깐 상상해보세요. 지금 이 도시 밑에는 ‘카미사’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어요. 케이프타운이 하필 이 자리에 세워진 이유, 사실 테이블 마운틴의 멋진 풍경 때문이 아니었어요. 진짜 이유는 물이었어요. 산에서 흘러내리는 신선한 샘물이 있었고, 코이코이족은 이 물줄기를 ‘단맛이 나는 물’, 카미사라고 불렀어요.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로 가는 배들을 위한 보급기지를 세울 자리를 찾다가 바로 이 물 때문에 이곳을 골랐죠. 그리고 놀랍게도, 37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강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도시 아래 지하 수로를 따라 여전히 흐르고 있고, 헤리티지 스퀘어 근처 보도블록에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가 들릴 정도예요. 심지어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지하 터널을 따라 이 강을 도보로 탐험하는 투어도 있어요. 화려한 빌딩 숲 아래, 이 도시를 있게 한 옛 강이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지 않나요?

판 리베이크의 아몬드 울타리 — 커스텐보쉬

커스텐보쉬 식물원 안쪽에 가면 얼핏 평범해 보이는 나무 울타리 하나를 만나게 돼요. 그런데 이 울타리에는 360년이 넘는 사연이 숨어 있어요. 1660년, 케이프 식민지의 초대 총독이었던 얀 판 리베이크는 코이코이족의 습격과 가축 도난을 막겠다며 정착지 경계를 따라 야생 아몬드 나무, 그러니까 쓴맛이 나는 아몬드 나무를 촘촘하게 심었어요. 겉으로는 방어용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코이코이족을 식민지 땅 바깥으로 밀어내려던 최초의 분리 정책이었던 셈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나무들 일부가 지금까지, 그러니까 무려 360년 넘게 살아남아서 커스텐보쉬 식물원 안에 그대로 서 있어요. 남아공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로 된 사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거죠. 아름다운 정원을 걷다가 문득 마주치는 이 낡은 나무 줄기가, 사실은 이 나라의 인종 분리 역사가 시작된 첫 장면이라는 걸 알면,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몰라요.

굿 호프 성 — 가짜 항복과 회색 옷의 여인

저 별 모양으로 생긴 요새, 굿 호프 성이라고 불리는 이 건물은 남아공에 남아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거예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1666년부터 1679년까지, 13년에 걸쳐 지었어요. 요새 지하에는 한때 죄수들을 가두던 던전이 있었고, 여기서 항구까지 이어졌다는 비밀 통로 전설도 전해 내려와요 — 아마 밀수나 은밀한 탈출에 쓰였을 거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 요새에서 가장 유명한 건 따로 있어요. 바로 ‘회색 옷의 여인’ 괴담이에요. 던전에서 처형된 여성의 영혼이라는 설도 있고, 19세기 어느 사령관의 정부였다는 설도 있는데, 재미있는 건 이게 그냥 옛날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실제로 야간 경비를 서던 위병들이 지금까지도 종종 목격담을 보고한다는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350년도 더 된 요새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회색 옷의 여인을 마주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1901년 페스트와 은다베니

흔히 남아공의 인종 분리,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하면 1948년을 떠올리시죠. 그런데 사실 인종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시도는 그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어요. 1901년, 케이프타운 항구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어요. 나중에 밝혀진 진짜 원인은 화물선에 실려 온 쥐였는데, 당시 당국은 엉뚱하게도 흑인 부두 노동자들을 감염원으로 지목했어요. 그리고 이걸 명분 삼아 시내에 살던 흑인 주민들을 전부 메이틀랜드 인근의 ‘은다베니’라는 새로운 거주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어요. 이게 바로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흑인 거주구역, 그러니까 타운십 분리 정책의 첫 사례였어요. 공식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시작된 게 1948년이니까, 이 사건은 그보다 무려 47년이나 앞선 거예요. 쥐 한 마리가 만든 오해가, 이 도시의 인종 분리 역사를 반세기 가까이 앞당긴 셈이죠.

디스트릭트 식스 — 철거됐지만 다시 짓지 못한 동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저 넓은 빈 공터, 얼핏 그냥 공사가 멈춘 땅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자리에는 원래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활기찬 동네가 있었어요. 이름은 디스트릭트 식스, 흑인과 혼혈, 인도계, 유대인이 한데 어울려 살던, 이 도시에서 가장 다채로운 곳이었어요. 그런데 1966년, 정부가 이 땅을 ‘백인 전용 구역’으로 지정해버렸어요. 그때부터 1982년까지, 그러니까 16년에 걸쳐 무려 6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케이프 플랫츠라는 외곽 지역으로 강제로 쫓겨났고, 그들이 살던 집과 건물은 하나도 남김없이 철거됐어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이 강제 철거가 국제 사회에서 너무 큰 비난을 받은 나머지, 정부조차 이 빈 땅 위에 계획했던 백인 주택을 짓겠다고 감히 발표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땅은 수십 년째 거의 빈 공터로 남아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텅 빈 풍경 자체가, 사실은 폭력의 흔적이자 동시에 그 폭력이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거죠. 지금은 디스트릭트 식스 박물관이 그때 그 동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요.

죄수선 ‘넵튠’ 사건

1849년, 대영제국은 호주에 했던 것처럼 이곳 케이프 식민지도 죄수들을 보내는 유배지로 쓸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죄수선 ‘넵튠’호에 죄수들을 태워 테이블 베이로 보냈죠. 그런데 이 계획은 케이프타운 시민들의 예상치 못한 저항에 부딪혔어요. 상인들은 배에 물자를 공급하는 걸 일제히 거부했고, 노동자들은 죄수들이 배에서 내리는 것 자체를 막아섰어요. 그렇게 무려 5개월 동안, 넵튠호는 짐도 못 내리고 항구에 발이 묶여 있었어요. 결국 영국 정부가 손을 들었고, 배에 탄 죄수들은 그대로 호주로 돌려보내졌어요.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이 도시에서 있었던 첫 번째 대규모 시민 저항으로 평가해요. 총 한 발 쏘지 않고, 그저 협력하지 않는 것만으로 제국의 계획을 무산시킨 셈이죠.

시그널 힐의 정오포

매일 정오가 되면 이 언덕에서 대포 소리가 한 번 울려 퍼져요. 처음 듣는 사람들에겐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지만, 사실 이 대포는 관광객을 위한 쇼가 아니에요. 1806년, 이 대포가 처음 설치됐을 때 목적은 단 하나, 항구에 정박한 모든 배들의 항해 시계를 정확히 맞추는 거였어요. 지금이야 GPS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게 있을 리 없었죠. 그러니 도시 전체, 그리고 항구의 모든 선박에게 이 대포 소리가 곧 표준시였던 거예요. 그리고 놀라운 건, 이 전통이 20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저 언덕에서 대포가 울릴 거예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보 전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거죠.

2

스프링복

콘월에서 건너온 광부들

지금 지나는 이 메마른 사막 마을, 스프링복과 오케프 일대를 한번 보세요. 지금은 그냥 황량한 벌판처럼 보이지만, 19세기에 이곳에서 구리 채굴 붐이 일었을 때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어요. 영국 콘월 지방에서 대대로 광산 일을 하던 숙련된 광부들이, ‘사촌 잭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지구 반대편인 이 사막까지 건너왔어요. 배를 몇 달씩 타고 와서, 자신들이 알던 광산 기술을 이 낯선 땅에 그대로 옮겨 심은 거예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흔적이 아직 남아있어요. 지금도 이 지역 일부 가문의 성씨를 들여다보면 콘월계 혈통의 흔적을 찾을 수 있대요.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 영국 시골 마을의 문화가 그대로 이식된 거죠. 상상해보면 꽤 낯설고도 흥미로운 조합이지 않나요?

사라진 영양 대이동

이 도시 이름, 스프링복은 사실 영양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19세기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서는 ‘트렉복킹’이라고 불리는 장관이 자주 펼쳐졌어요. 스프링복 영양 떼가 수십만 마리씩 무리를 지어, 며칠에 걸쳐 이 벌판을 가로지르는 광경이었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였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대이동을 볼 수 없어요. 농장을 나누는 울타리가 곳곳에 들어서고, 무분별한 사냥이 이어지면서 그 장관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거든요.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그 영양의 이름을 딴 도시 하나뿐이에요. 한때 대지를 가득 채웠던 생명의 물결이, 이제는 지명 속에만 남아있는 셈이죠.

3

고에갑 자연보호구

사냥으로 사라졌던 동물들이 돌아온 화강암 정원

고에갑 일대는 한때 무분별한 사냥으로 스프링복과 젬스복 같은 영양들이 크게 줄었던 땅이에요. 1970년대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이 화강암 봉우리 사이 메마른 땅에 약 45종의 포유류가 다시 자리를 잡았어요. 사람이 망가뜨린 생태를, 사람이 보호구역으로 묶어서 다시 되돌린 작지만 분명한 회복의 사례예요.

고개를 늘 북쪽으로 기울이는 ‘반인간’ 식물

여기 고에갑에도 나마콸란드 곳곳에 서식하는 ‘하프멘스’, 반인간 다육식물이 자라요. 나마 부족 전설에 따르면, 전쟁과 가뭄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도망친 사람들이 신의 가엾음으로 반은 인간, 반은 식물로 변한 모습이 바로 이 식물이래요. 그래서 이 식물은 지금도 늘 머리를 북쪽, 잃어버린 고향 쪽으로 기울인 채 자란다고 전해져요.

4

스킬패드 (나마콸 국립공원)

분지 하나가 사막을 꽃밭으로 바꾸다

스킬패드는 1988년 WWF가 나마콸란드 꽃 왕국을 보전하려고 따로 설립한 보호구예요. 이곳이 나마콸란드 전체에서도 유독 화려한 꽃 전시를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는 지형에 있어요. 분지 모양의 지형이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차가운 바다 안개를 가둬서, 다른 곳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분을 머금기 때문이에요. 똑같이 건조한 나마콸란드 안에서도, 이 분지 하나가 매년 가장 화려한 꽃 카펫을 만들어내는 비밀인 거예요.

사막인데 식물이 제일 다양한 곳

보통 사막은 식물 다양성이 낮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 지역은 정반대예요. ‘다육식물 카루’라는 독특한 생물군계에 속하는 이 땅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사막 식물상을 가진 곳으로 꼽혀요. 메마르고 척박해 보이는 이 땅이, 사실은 세계 어느 사막보다 다양한 생명을 품고 있는 거예요.

5

오렌지강 국경

국경 넘기 전 마지막 만탱크 기회실용 정보

이제 곧 남아공과 나미비아를 가르는 오렌지강 국경, 피울스드리프트를 건너게 돼요. 국경을 넘고 나면 바로 셸 주유소가 하나 있는데, 카드 결제가 가능하고 심카드도 판매해요.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다음 주유소는 무려 118킬로미터 뒤에 있는 아이아이스인데, 그곳은 카드가 안 되고 현금만 받는 데다 공급도 불안정해요. 그러니까 이 국경 주유소에서 최대한 기름을 채워두고 출발하는 게 안전해요.

6

소수스블레이

극한의 사막에서도 사람은 살았다

지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 사막, 물 한 방울 구경하기 힘든 극한의 환경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살아왔어요. 산족, 흔히 부시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남긴 도구와 흔적이 이 일대 곳곳에서 발견돼요. 그들은 타조알 껍질 안에 물을 채워 넣고 다니는 독특한 방식으로 물을 저장하고 옮기면서, 이 극단적으로 건조한 사막에 적응해 살아남았어요. 우리가 지금 며칠간의 여행으로도 힘들어하는 이 땅에서,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가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 않나요?

‘빅 대디’와 ‘빅 마마’

저 앞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모래언덕 보이시나요? ‘빅 대디’라고 불리는 이 모래언덕은 사실 지도에 정식으로 등록된 이름이 아니에요. 이곳을 오가던 여행자들과 가이드들이 자연스럽게 붙인 별명이 그대로 굳어진 거예요. 골짜기 바닥에서 정상까지 높이가 무려 325미터가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 중 하나로 꼽혀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정상까지 오르는 게 쉽지 않지만, 일단 올라가면 그 고생을 보상해주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어요. 정상에서는 바로 옆에 있는 데드블레이 전체가 새하얗게, 마치 다른 행성처럼 펼쳐진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거든요.

7

데드블레이

900년 넘게 썩지 않은 나무

이 까맣게 탄 듯한 나무들, 사실 불에 탄 게 아니에요. 약 600년에서 900년 전, 강물이 흐르던 시절 이곳에서 자란 카멜손나무들이에요. 모래언덕이 강을 막으면서 나무들이 말라 죽었는데, 이 지역이 너무 건조해서 나무를 분해하는 곰팡이나 박테리아조차 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죽은 지 거의 천 년이 다 됐는데도, 나무껍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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