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10 · 길 위에서 만나는 이야기

케이프타운 → 가든 루트 왕복 (가는길 N2 해안 · 오는길 Route 62 내륙

이 여정에서 만나는 34개의 이야기입니다. GPS 음성으로 안내되는 역사·문화·자연 해설을, 여기서는 글로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

케이프타운

사라 바트만 — 슬레이브 로지

지금 지나는 이 건물, 오늘날은 슬레이브 로지라는 이름의 박물관이지만 원래는 노예들이 지내던 숙소였어요. 이 안에는 사라 바트만이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전시돼 있는데,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예요. 사라는 이스턴 케이프의 감투스 강 유역에서 태어난 코이코이족 여성이었어요. 케이프타운에서 하녀로 일하던 그녀에게, 1810년 한 영국인과 케이프타운 상인이 접근해서 런던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꾀었어요. 그렇게 그녀는 대서양을 건너 런던 피커딜리 거리에 세워졌고,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전시됐어요. 당시 유럽인들 눈에는 낯설게 보였던 그녀의 체형이 구경거리가 된 거죠. 영국의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그녀를 구하려고 법정까지 갔지만, 강압을 받았을 가능성이 짙은 상황에서도 그녀는 법정에서 스스로 원해서 왔다고 진술했고, 결국 풀려나지 못했어요. 1814년에는 프랑스로 팔려가 파리에서도 비슷하게 전시됐고, 당대 최고의 박물학자였던 조르주 퀴비에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1815년, 겨우 스물다섯 살 무렵 파리에서 눈을 감았는데, 퀴비에는 그녀의 시신을 해부해서 뇌와 생식기를 표본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 표본은 무려 1974년까지, 그러니까 그녀가 죽고 160년 가까이 지날 때까지 파리 인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녀가 마침내 고향 땅으로 돌아와 묻힌 건 2002년, 넬슨 만델라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한 뒤였어요. 공교롭게도 그 반환식이 열린 날짜가 남아공의 ‘여성의 날’이었다는 것도, 알고 나면 마음에 오래 남는 우연이에요.

카미사 — 도시 밑을 흐르는 숨은 강

운전하면서 잠깐 상상해보세요. 지금 이 도시 밑에는 ‘카미사’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어요. 케이프타운이 하필 이 자리에 세워진 이유, 사실 테이블 마운틴의 멋진 풍경 때문이 아니었어요. 진짜 이유는 물이었어요. 산에서 흘러내리는 신선한 샘물이 있었고, 코이코이족은 이 물줄기를 ‘단맛이 나는 물’, 카미사라고 불렀어요.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로 가는 배들을 위한 보급기지를 세울 자리를 찾다가 바로 이 물 때문에 이곳을 골랐죠. 그리고 놀랍게도, 37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강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도시 아래 지하 수로를 따라 여전히 흐르고 있고, 헤리티지 스퀘어 근처 보도블록에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가 들릴 정도예요. 심지어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지하 터널을 따라 이 강을 도보로 탐험하는 투어도 있어요. 화려한 빌딩 숲 아래, 이 도시를 있게 한 옛 강이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지 않나요?

판 리베이크의 아몬드 울타리 — 커스텐보쉬

커스텐보쉬 식물원 안쪽에 가면 얼핏 평범해 보이는 나무 울타리 하나를 만나게 돼요. 그런데 이 울타리에는 360년이 넘는 사연이 숨어 있어요. 1660년, 케이프 식민지의 초대 총독이었던 얀 판 리베이크는 코이코이족의 습격과 가축 도난을 막겠다며 정착지 경계를 따라 야생 아몬드 나무, 그러니까 쓴맛이 나는 아몬드 나무를 촘촘하게 심었어요. 겉으로는 방어용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코이코이족을 식민지 땅 바깥으로 밀어내려던 최초의 분리 정책이었던 셈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나무들 일부가 지금까지, 그러니까 무려 360년 넘게 살아남아서 커스텐보쉬 식물원 안에 그대로 서 있어요. 남아공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로 된 사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거죠. 아름다운 정원을 걷다가 문득 마주치는 이 낡은 나무 줄기가, 사실은 이 나라의 인종 분리 역사가 시작된 첫 장면이라는 걸 알면,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몰라요.

굿 호프 성 — 가짜 항복과 회색 옷의 여인

저 별 모양으로 생긴 요새, 굿 호프 성이라고 불리는 이 건물은 남아공에 남아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거예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1666년부터 1679년까지, 13년에 걸쳐 지었어요. 요새 지하에는 한때 죄수들을 가두던 던전이 있었고, 여기서 항구까지 이어졌다는 비밀 통로 전설도 전해 내려와요 — 아마 밀수나 은밀한 탈출에 쓰였을 거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 요새에서 가장 유명한 건 따로 있어요. 바로 ‘회색 옷의 여인’ 괴담이에요. 던전에서 처형된 여성의 영혼이라는 설도 있고, 19세기 어느 사령관의 정부였다는 설도 있는데, 재미있는 건 이게 그냥 옛날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실제로 야간 경비를 서던 위병들이 지금까지도 종종 목격담을 보고한다는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350년도 더 된 요새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회색 옷의 여인을 마주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1901년 페스트와 은다베니

흔히 남아공의 인종 분리,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하면 1948년을 떠올리시죠. 그런데 사실 인종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시도는 그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어요. 1901년, 케이프타운 항구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어요. 나중에 밝혀진 진짜 원인은 화물선에 실려 온 쥐였는데, 당시 당국은 엉뚱하게도 흑인 부두 노동자들을 감염원으로 지목했어요. 그리고 이걸 명분 삼아 시내에 살던 흑인 주민들을 전부 메이틀랜드 인근의 ‘은다베니’라는 새로운 거주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어요. 이게 바로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흑인 거주구역, 그러니까 타운십 분리 정책의 첫 사례였어요. 공식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시작된 게 1948년이니까, 이 사건은 그보다 무려 47년이나 앞선 거예요. 쥐 한 마리가 만든 오해가, 이 도시의 인종 분리 역사를 반세기 가까이 앞당긴 셈이죠.

디스트릭트 식스 — 철거됐지만 다시 짓지 못한 동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저 넓은 빈 공터, 얼핏 그냥 공사가 멈춘 땅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자리에는 원래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활기찬 동네가 있었어요. 이름은 디스트릭트 식스, 흑인과 혼혈, 인도계, 유대인이 한데 어울려 살던, 이 도시에서 가장 다채로운 곳이었어요. 그런데 1966년, 정부가 이 땅을 ‘백인 전용 구역’으로 지정해버렸어요. 그때부터 1982년까지, 그러니까 16년에 걸쳐 무려 6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케이프 플랫츠라는 외곽 지역으로 강제로 쫓겨났고, 그들이 살던 집과 건물은 하나도 남김없이 철거됐어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이 강제 철거가 국제 사회에서 너무 큰 비난을 받은 나머지, 정부조차 이 빈 땅 위에 계획했던 백인 주택을 짓겠다고 감히 발표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땅은 수십 년째 거의 빈 공터로 남아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텅 빈 풍경 자체가, 사실은 폭력의 흔적이자 동시에 그 폭력이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거죠. 지금은 디스트릭트 식스 박물관이 그때 그 동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요.

죄수선 ‘넵튠’ 사건

1849년, 대영제국은 호주에 했던 것처럼 이곳 케이프 식민지도 죄수들을 보내는 유배지로 쓸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죄수선 ‘넵튠’호에 죄수들을 태워 테이블 베이로 보냈죠. 그런데 이 계획은 케이프타운 시민들의 예상치 못한 저항에 부딪혔어요. 상인들은 배에 물자를 공급하는 걸 일제히 거부했고, 노동자들은 죄수들이 배에서 내리는 것 자체를 막아섰어요. 그렇게 무려 5개월 동안, 넵튠호는 짐도 못 내리고 항구에 발이 묶여 있었어요. 결국 영국 정부가 손을 들었고, 배에 탄 죄수들은 그대로 호주로 돌려보내졌어요.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이 도시에서 있었던 첫 번째 대규모 시민 저항으로 평가해요. 총 한 발 쏘지 않고, 그저 협력하지 않는 것만으로 제국의 계획을 무산시킨 셈이죠.

시그널 힐의 정오포

매일 정오가 되면 이 언덕에서 대포 소리가 한 번 울려 퍼져요. 처음 듣는 사람들에겐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지만, 사실 이 대포는 관광객을 위한 쇼가 아니에요. 1806년, 이 대포가 처음 설치됐을 때 목적은 단 하나, 항구에 정박한 모든 배들의 항해 시계를 정확히 맞추는 거였어요. 지금이야 GPS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게 있을 리 없었죠. 그러니 도시 전체, 그리고 항구의 모든 선박에게 이 대포 소리가 곧 표준시였던 거예요. 그리고 놀라운 건, 이 전통이 20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저 언덕에서 대포가 울릴 거예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보 전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거죠.

2

허마누스

세계에 단 하나뿐인 직업 — 고래 외침꾼

지금 걷고 있는 이 절벽 산책로 어딘가에서, 마른 켈프, 그러니까 해초로 만든 뿔피리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요. 그 소리의 주인공은 ‘고래 외침꾼’이라는,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일무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에요. 뿔피리를 불면서 들고 있는 표지판으로 어느 만에서 고래가 보이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죠. 1990년대부터 이어진 전통인데, 지금도 매일 이 마을 어딘가에서 그 뿔피리 소리가 울려요. 세계 어디를 가도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허마누스에만 있어요.

‘하늘과 땅’이라는 시적인 이름을 빼앗은 한 목축업자

이 마을 이름, 원래는 ‘허마누스’가 아니었어요. 원래 이 계곡은 ‘헤멜엔아르데’, 그러니까 ‘하늘과 땅’이라는 시적인 이름으로 불렸어요. 그런데 1850년대, 여기서 소를 방목하던 헤르마누스 피터르스라는 평범한 교사의 이름이 우체국 공식 주소로 등록되면서 마을 이름이 통째로 바뀌어버렸어요. 시적이었던 원래 이름은 지금 마을 뒤편 와인 밸리 이름으로만 남아있어요. 지금 우리가 부르는 마을 이름이, 사실은 우체국 행정 착오에 가까운 우연에서 시작된 거예요.

3

모셀 베이

낡은 신발 한 짝 속의 편지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통’

이 나무, 1500년에 한 포르투갈 선장이 낡은 신발 한 짝 속에 편지를 넣어 걸어둔 게 시작이었어요. 페드루 드 아타이드라는 선장이었는데, 1년 뒤인 1501년, 다른 선단의 선장 주앙 다 노바가 우연히 이 신발을 발견해서 편지를 본국 포르투갈까지 전달했어요. 우체국도 우체통도 없던 시절, 나무 한 그루가 그저 운에 맡긴 우체통 역할을 실제로 해낸 거예요.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후 지나는 선원들도 같은 방식으로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그 나무는 지금까지도 ‘우체통 나무’로 불리며 남아공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기념물 중 하나로 남아있어요. 지금도 여기서 엽서를 부치면 그 역사를 기념하는 특별한 소인이 찍혀요.

16만 4천 년 전, 인류 ‘현대적 사고’가 시작된 동굴

지금 우리가 지나는 이 해안가 동굴에서, 약 16만 4천 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안료(오커)를 사용해 색을 칠하고, 불로 가열해 돌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기술을 썼으며, 조개를 체계적으로 채집해 먹은 흔적이 발견됐어요. 이건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인류의 상징적 사고와 복합적 행동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 중 하나로 꼽혀요. 일부 학자들은 빙하기 동안 이 해안의 풍부한 조개와 식량 덕분에 인류 조상의 일부가 멸종을 피하고 살아남았을 거라는 가설을 제기해요. 어쩌면 이곳이 인류가 빙하기를 견뎌낸 마지막 피난처였을지도 몰라요.

사냥터에서 관찰지로 — 씰 아일랜드

저 앞에 보이는 작은 섬, 씰 아일랜드예요. 19세기엔 강치 가죽과 기름을 얻기 위한 사냥터였어요. 무분별한 사냥으로 한때 개체수가 크게 줄었는데, 20세기 들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강치들이 다시 늘어났어요. 지금은 사냥 대신 보트를 타고 가까이서 강치를 관찰하는 생태 관광지가 됐어요. 같은 섬이 착취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완전히 뒤바뀐 거예요.

4

와일더니스

강 굽이가 그린 아프리카 대륙 — 우연이 만든 지도

지금 내려다보이는 저 강의 굽이, 자세히 보면 아프리카 대륙 모양과 똑같지 않나요? 서펜타인 강이 습지를 따라 구불구불 흐르는 모습인데, 누가 의도해서 만든 게 아니라 순전히 강물의 자연스러운 침식과 퇴적이 만든 우연이에요. 그런데 그 우연이 너무 정교해서 ‘아프리카 지도’라는 이름까지 붙었어요.

사라진 절벽 위 기차 —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철길

지금 보이는 저 끊긴 다리, 한때 증기기관차가 인도양 바로 옆 절벽을 따라 달리던 철길이었어요. 와일더니스 옆 케이만스 강 협곡을 가로지르던 이 옛 철도는, 해안 절벽을 따라 인도양을 바로 옆에 두고 지나가는 풍경 덕분에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도 여행 중 하나로 꼽혔어요. 그런데 2006년 대홍수로 다리와 선로가 크게 파손됐고, 결국 완전히 운행이 멈췄어요. 지금은 끊긴 철교 흔적만 남아, 한때 기차가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해요.

5

나이스나

“나는 왕의 숨겨진 아들이다” — 나이스나를 세운 남자의 자작 전설

이 마을을 세운 조지 렉스라는 사람, 자기가 영국 왕 조지 3세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소문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어요. 역사학자들은 근거 없는 낭설로 보지만, 그 자신이 소문을 퍼뜨렸거나 즐겼다는 설도 있어요. 실제로는 왕족이 아니라 변호사 집안 출신 사업가였는데, 그 소문 덕분에 마치 왕족이 다스리는 마을처럼 ‘나이스나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도시를 키웠어요. 진짜 신분과 상관없이, 소문 하나가 이 도시의 정체성이 된 셈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코끼리

지금 지나는 이 숲에 살던 코끼리들, 한때는 큰 무리였는데 사냥과 벌목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어요. 2000년대 들어 카메라 트랩으로 추적한 결과, 한동안 숲에 남은 건 늙은 암컷 코끼리 한 마리뿐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코끼리’로 불렸어요. 그런데 2019년 분뇨 DNA 조사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개체가 발견돼서 과학자들이 놀라기도 했어요. 정확한 개체수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어요.

6

페더베드 자연보호구

다리가 없어서 살아남은 절벽

나이스나 헤즈는 석호 입구를 가르는 두 개의 절벽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금 서 있는 이 절벽과 반대편 헤드는 똑같이 멋진 전망을 가졌으면서도 운명이 완전히 달라요. 도로로 연결된 동쪽 헤드는 주택과 전망대로 개발됐지만, 페리로만 닿을 수 있는 이쪽 서쪽 헤드는 그 불편한 접근성 덕분에 오히려 개발을 피해서 토착 피노보스 생태계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게 됐어요. 다리 하나가 없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이 절벽 전체를 자연 그대로 지켜낸 셈이에요.

7

플레텐버그 베이

고래를 보러 오는 호텔이, 한때는 고래를 죽이던 자리였다

지금 이 호텔, 플렛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 중 하나인 비콘 아일랜드예요. 그런데 한 세기 전엔 고래잡이 기지였어요. 20세기 초 노르웨이 포경업자들이 운영하던 고래기름 가공 기지가 있던 자리거든요. 잡은 고래를 해체해서 기름을 짜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고래를 보러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 됐죠. 같은 장소가, 정반대의 이유로 고래가 핵심인 곳이 된 셈이에요.

8

로버그 자연보호구

12만 년 전, 인류가 바다를 처음 먹기 시작한 곳

이 반도의 동굴에서는 약 12만 년 전 인류가 거주한 흔적이 발견됐어요. 단순히 오래된 거주지라는 게 아니라, 조개껍데기와 물고기 뼈가 대량으로 함께 나왔다는 점이 중요해요. 이건 인류가 해안 자원을 체계적인 식량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가장 오래된 증거 중 하나로 꼽혀요.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해산물을 먹는다’는 행위가, 사실 이 절벽 아래 동굴에서 시작된 셈이에요.

강치의 산이라는 이름

‘로버그’는 아프리카네스어로 ‘강치의 산’이라는 뜻이에요. 절벽 아래 바위에 실제로 케이프 강치 군락이 서식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이름 그 자체가 이 땅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셈이에요.

9

치치캄마

홍차처럼 검은 강물 — 오염이 아니라 자연의 색

지금 보이는 이 강물, 색깔만 보면 오염된 것 같죠? 마치 진한 홍차처럼 검붉은 색을 띠는데, 처음 보는 여행자들은 오염됐다고 오해하기 쉬워요. 사실은 주변 피노보스 식물, 특히 부틸 산이 풍부한 관목에서 나온 천연 타닌 성분이 우러나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깨끗하지만 검게 보이는, 이 지역 강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에요.

벌목을 피해 살아남은 마지막 거목

이 거대한 나무, ‘빅 트리’라는 이름 그대로 800년에서 1,000년을 살아왔어요. 치치캄마 일대 옐로우우드 숲은 19~20세기 조선·건축용 목재 수요로 대부분 잘려나갔는데, 한때 이 일대 전체가 이런 거목으로 가득했어요. 목재로 쓰려고 거의 다 베어버린 뒤, 지금 이 나무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있어요.

예약하는 데 1년이 걸리는 트레일

1968년 지정된 오터 트레일은 남아공 최초의 공식 하이킹 트레일이에요. 인기가 너무 많은데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적어서, 인기 시즌엔 출발 1년 전부터 예약이 마감되는 경우가 흔해요. 지금 우리가 무심코 지나는 이 출발점이, 사실은 세계 각지 하이커들이 1년을 기다려 서는 자리인 거예요.

10

스톰스 리버

숲을 베던 마을이, 숲 위를 날며 숲을 지키는 마을이 되다

지금 지나는 이 마을, 스톰스 리버는 원래 옐로우우드 거목을 베어내는 임업 노동자들을 위해 세워졌어요. 그런데 2001년, 이 마을 사람들은 정반대의 사업을 시작했어요. 아프리카 최초의 짚라인 캐노피 투어를 만들어서, 나무를 베는 대신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돈을 벌기 시작한 거예요. 투어 수익 일부는 지금도 숲 보전 기금으로 쓰여요. 한 세기 만에 마을의 존재 이유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에요.

11

블루크란스 브리지

고속도로 다리가 세계 기록을 세우다

지금 건너는 이 다리, 원래는 그냥 고속도로 다리였어요. 1983년 N2 고속도로가 협곡을 가로지르도록 지어진 평범한 교통 시설이었죠. 그런데 1990년부터 이 다리에서 번지점프 사업이 시작되면서, 다리 바닥에서 협곡 바닥까지 216미터에 달하는 낙하 거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업 번지점프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어요. 자동차가 지나다니라고 지은 다리가, 지금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뛰어내리는 명소가 된 거예요.

12

아웃츠호른

깃털 하나로 궁전을 지은 사람들

지금 지나는 이 저택들, ‘깃털 궁전’이라고 불려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 여성 모자 장식용 타조 깃털 수요가 폭증하면서 아웃츠호른 농장주들은 막대한 부를 쌓았어요. 한창때는 타조 깃털 가격이 같은 무게의 금에 비견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농장주들은 그 돈으로 이런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었어요. 그런데 1차 대전 전후로 깃털 유행이 갑자기 꺾이면서, 한때 금만큼 비쌌던 이 산업은 순식간에 몰락했어요.

13

캉고 동굴

수백만 년 걸려 만들어진 지하 미술관

이 동굴, 1780년에 한 목동이 처음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수백만 년 동안 물이 깎아 만든 석회암 종유석 구조인데, 아프리카에서 헤리티지 투어와 어드벤처 크롤링 투어를 함께 제공하는 유일한 쇼케이브예요. 가장 깊은 구역은 지금도 일반 관광객에게는 공개가 안 돼요.

14

칼리츠도르프

포르투갈 품종이 카루 사막에서 더 잘 자란 이유

포트 와인, 원래는 포르투갈 도루 밸리의 특산물이잖아요. 그런데 칼리츠도르프의 고온건조한 카루 기후가 오히려 그 포도 품종, 투리가 나시오날 같은 품종에 더 잘 맞았어요. 그 결과 이 작은 카루 마을이 남아공 포트 와인 생산의 중심지가 됐고, 지역 와이너리들이 국제 포트 와인 대회에서 수십 년간 수상하며 ‘남아공 포트 와인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15

바리데일

양 떼 마을이 갤러리 마을로 변신하다

바리데일은 오랫동안 평범한 농업·목축 마을이었어요. 그런데 21세기 들어 케이프타운 같은 도시를 떠난 예술가와 공예가들이 하나둘 정착하면서, 마을 중심가가 갤러리와 공방으로 채워진 ‘카루 아트 허브’로 바뀌었어요. 황량한 사막 풍경 한가운데 예상치 못한 예술촌이 생긴 셈이에요.

16

몽타구

온천 마을이 록 클라이밍의 성지가 되다

몽타구는 오랫동안 천연 온천으로만 알려졌었어요. 그런데 20세기 후반, 마을을 둘러싼 이 사암 절벽이 록 클라이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또 다른 정체성을 얻었어요. 지금은 온천에서 몸을 담그는 여행자와 절벽을 오르는 클라이머가 같은 마을에서 공존하고 있어요.

17

코그만스클루프 협곡

좁은 바위 틈이 전쟁터가 된 이유

지금 지나는 이 좁은 협곡, 그냥 절경 드라이브가 아니에요. 19세기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케이프 내륙으로 들어가는 거의 유일한 길목이었어요. 그래서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이어진 보어 전쟁 당시, 이 좁은 바위 틈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곧 그 너머 내륙 전체로의 접근을 결정하는 문제였어요. 영국군과 보어군이 이 통로를 두고 전투를 벌인 흔적이, 지금도 절벽 위 작은 요새 유적으로 남아있어요.

18

로버트슨

와인보다 향수 때문에 유명해진 마을

이 동네, 와인 마을로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별명이 하나 더 있어요. ‘남아공의 향수 수도’예요. 이 일대 농장에서 기르는 제라늄·로즈 오일이 유럽 고급 향수 산업에 대량으로 들어가거든요. 와인 테이스팅을 즐기러 온 여행자 대부분은 같은 땅에서 향수 원료도 자라고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가요.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의 메인 도로

지금은 한적한 와인 마을이지만, 1958년 N2 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이 Route 62는 케이프타운과 포트 엘리자베스를 잇는 유일한 메인 도로였어요. 로버트슨은 그 길목에 자리한 핵심 정류 마을로, 와인 산지가 되기 전부터 이미 교통의 요지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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